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문단 편집) === 창단 ~ 1950년대 === 1905년[* 학교 측 주장, 인고100년사에 따르면 학교에서 야구활동을 한 학생의 일기가 있다고 한다 ]에 창단해서 전신인 인천공립상업학교(인상)가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갑자원, 고시엔)에도 출전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 한국 야구를 선도했던 팀 중 하나였다. 특히 50년대 인천고감독으로 인천고의 전성시대를 연 김선웅(인천고 36회) 선생은 1936년 갑자원(고시엔) 대표로 출전하기도 한다. 인천상업은 1936,38,39년에 갑자원 본선에 진출했으며 36년에 김선웅, 장영식 선생 2명이 선수로 출전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인천공립상업중학교 시절에는 신현철, 김재은 등을 중심으로 전국대회에 진출하였으나 동산중의 [[박현식]]에 번번히 밀려 우승권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전후 1950년대 인천야구의 전성 시대에 그대로 폭발하게 되었다.[* 당시 인천고 교장선생님이 훗날 충암고를 설립한 충암 이인관 선생이다. ] 인고100년사에서는 그 공을 교장 이인관, 이병규 선생, 감독인 김선웅 선생, 야구부장 김두한 선생에게 돌리며 기리고 있다. 1952년 유일무이한 전국대회였던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달성하고 인천이 배출한 전설의 국가대표 에이스 [[서동준]]을 앞세워 1953년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쌍룡기]](화랑기)[* 당시 부산의 쌍룡기는 메이저 대회의 위상이었다.], [[청룡기]], [[전국체육대회]] 우승에 성공하며 '''전관왕'''[* 1953년에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황금사자기]]가 열리지 않음] 의 위업을 달성하며 인천고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1954년에는 '''청룡기와 황금사자기, 전국체전을 모두 석권'''하면서 전국 제일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부산에서 열린 쌍룡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쉬울 정도의 성적이었다.[* 서동준은 1954년 고3의 신분으로 한국 최초의 야구국가대표로 최연소로 선발되었다. ] 1955년에는 청룡기와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우승에 도전하지만, 1955년 청룡기에서는 인천이 낳은 또다른 전설 [[신인식]]의 [[동산고]]에게 패하면서 무릎을 꿇었고, 황금사자기에서는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에 지면서 모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부산 쌍룡기를 우승하며 2년만에 우승을 되찾았다. 다만 1955년을 기점으로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의 전성기가 열려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의 청룡기 3연패를 지켜봐야 했다.[* 동산고는은 55년 청룡기 우승을 제외하고는 1회전 탈락 및 예선 탈락이었다.] 이 기간 53회 주세현, 진원주, 서동준, 김광택, 54회 김영복[* 삼성라이온스 김한수 부친 ], 조영한, 진호영, 김홍기, 55회 [[김진영(1935)|김진영]],이기상, 김일겸 등이 활약하였다. 인천 야구로서는 53년부터 57년까지 청룡기 5연패(인천고 2연패,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3연패)를 하며 전국 최강의 위용을 자랑했으나 인천고 입장에서는 53,54 2연패 이후 55년과 58년에 '''청룡기 준우승'''에 그쳤다. 1956년에도 부산 쌍룡기 (화랑기)에서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를 만나 준우승에 머물렀다.[*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는 56년 전관왕 - 청룡기, 쌍룡기, 전국체전, 전국4도시대항 대회 / 황금사자기는 열리지 않았다.] 1957년에도 청룡기에서는 인천고의 3연패를 저지했던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를 만나 3연패를 저지하는 입장으로 나섰으나 또다시 '''준우승''', 결국 동산의 3연패를 지켜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고는 2번의 청룡기 준우승(55, 57)에 그치며 분루를 삼키게 되었다. ||[[파일:/image/sports/2009/baseball/expert_contents/pdh/ec_content/expert_220/1239588681_file_image_1.jpg]]|| ||[[임호균]]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